호주 시민들이 18일 시드니 본다이 비치에서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시드니=AP 연합뉴스


평화롭던 한여름의 일요일, 호주 시드니에서 가장 붐비는 본다이 비치를 한순간에 악몽으로 만든 테러가 일어났습니다. 지난 14일 오후 갑자기 총격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수백 명의 시민들이 혼비백산해 흩어졌습니다. 당시 인근에서는 유대인들의 명절 중 하나인 '하누카' 첫날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이날 사건으로 사망한 사람은 현재까지 총 15명입니다. 10세 소녀부터 87세 노인 모바일바다이야기 까지 피해자 연령은 다양했고, 호주 외 이스라엘과 프랑스 국적자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여전히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이만 40여 명으로, 위독한 사람들이 포함돼 있어 사망자 수가 늘어날 가능성도 높은 상태입니다.
범인의 정체는 금세 드러났습니다. 총기난사 테러범은 사지드 아크람(50)과 나비드 아크람(24)으로, 두 사람은 부자지간입니다. 모바일바다이야기 총기 소지 허가증을 가지고 있던 사지드 아크람은 사건 당시 총기 6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차량에서는 즉석폭발장치(IED)가 발견됐습니다. 아버지는 현장에서 호주 경찰에 의해 사살됐고, 아들인 나비드 아크람은 중상을 입은 채 체포됐습니다.
당국은 총격범들의 범행이 "악의적인 반유대주의"라고 정의 내렸습니다. 이들이 이슬람국가(IS)의 이념 바다이야기슬롯 과 뿌리 깊은 반유대주의의 영향을 받은 뒤 유대교 축제를 일부러 급습했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당국이 내놓은 '핵심 근거'는 아크람 부자의 필리핀 여행이었습니다. 이들은 11월 1일 필리핀 마닐라에 도착해 민다나오섬 다바오를 방문했고, 같은 달 28일 호주 시드니로 돌아간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왜 필리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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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호주 시드니 본다이 비치 인근 다리에서 총격범들이 총을 쏘는 장면이 담긴 영상 화면 캡처. 범인은 사지드 아크람과 나비드 아크람으로, 둘은 부자지간이다. AFP 연합뉴스


IS의 본거지인 중동 국가도 아닌, 필리핀이 왜 바다이야기비밀코드 테러리스트 양성소로 지목된 걸까요? 사실 필리핀 남부는 '무법지대'에 가깝습니다. 섬으로 이뤄진 필리핀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민다나오섬은 이슬람 분리주의자와 공산 반군, 군벌들의 끊임없는 분쟁으로 수십 년간 몸살을 앓아왔습니다. 알카에다부터 제마 이슬라미야(JI·동남아 거점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부분의 폭력 단체들이 이곳에 거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지역이 무장단체들의 앞마당이 된 이유는 다양합니다. 호주 파이낸셜리뷰(AFR)에 따르면 이곳은 지리적으로 숲이 우거진 산악 지형이 많아 몸을 숨기기 쉽고, 가톨릭 신자가 대다수인 필리핀에서 유일하게 무슬림이 상당수를 차지하는 지역입니다. 정치적, 역사적으로 중앙 정부에 대한 반감이 상당한 지역이면서 해상 국경은 허술합니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뿐 아니라 중동 지역에서 무기와 외국인 전투원이 쉽게 유입될 수 있는 환경이라는 의미죠. 롬멜 반라오이 필리핀 평화·폭력·테러 연구소장은 AFR에 "필리핀은 테러리스트 훈련 활동에 매우 적합한 환경"이라며 "전투 및 게릴라 훈련과 급조 폭발물 제조 훈련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지역 내 분쟁도 끊이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2017년 IS 연계 무장 세력이 민다나오섬 내 마라위를 장악하고 5개월간 통치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필리핀 정부군에 의해 쫓겨났지만, 세력을 장악한 동안 이들은 외국인 전투원과 자금을 마라위에 끌어들였고 그 과정에서 수십 명이 사망하고 수만 명이 난민으로 전락했습니다. 아크람 부자가 머물렀던 다바오는 IS가 장악했던 마라위와 가까운 곳입니다. AFR은 "다바오는 물자 조달을 준비하는 곳으로, 필리핀 내 모든 무슬림 무장 세력이 만나는 곳"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변화한 테러 방식



호주 시드니 본다이 비치 총격범 아크람 부자가 11월 한 달간 방문했다고 알려진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섬 다바오에 17일 경찰차가 지나가고 있다. 다바오=AP 연합뉴스


2019년 이후 대부분 단체의 전력이 크게 약화하면서 극단주의 공격은 감소했지만, 여전히 이 지역에는 아크람 부자와 같은 이들을 기꺼이 지원해 주는 테러 단체들이 산발적으로 존재합니다. 반라오이 연구소장은 이것이 테러리즘의 "새로운 단계"라고 진단합니다. 과거와 달리 소규모 가족 기반 조직이 온라인으로 소통해 활동하며, 고립된 환경에서 급진화한 후 필리핀과 같은 해외에서 전술을 배우는 행태가 뚜렷해지고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호주 정보보안기구(ASIO)는 올해 테러 위협 평가 보고서에서 "테러 공격은 개인이나 소규모 네트워크에 의한 예측 불가능한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
본다이 비치에서 발생한 테러 장면을 담은 영상을 보면, 아크람 부자는 다리 위에 자리를 잡아 시야를 확보하고 엄폐물을 활용하며 공격합니다. 총기를 다루는 방식도 상당히 연습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클라크 존스 호주국립대 범죄학자는 AFR에 "이는 즉흥적인 폭력 행위라기보다는 기본적인 전술 훈련에 따른 것"이라며 "훈련 수준이 그다지 높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여 조직적인 지휘 통제 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증거는 아직까지 찾을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필리핀 남부의 무장 단체들이 남긴 유산을 완전히 정리하지 않는다면 아크람 부자와 같은 극단주의자들이 산발적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라오이 소장은 "테러리스트 기질을 가진 자들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고 있는데, 이번 테러 공격으로 그들이 새로운 목적을 찾게 됐다"며 경고했습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