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의 김문호 명동화랑 대표. 유족이 제공한 사진이다.


근대 이후 자본의 시대에 미술사의 주역은 화가만이 아니었다. 먼 미래의 작품 가치를 꿰뚫어 본 미술상인(화상)도 중요한 구실을 했다.
19세기 말~20세기 초 프랑스에 르누아르, 드가 등 인상파와 세잔, 마티스, 피카소 같은 전위 화가들을 키운 화상 앙브루아즈 볼라르(1866~1939)가 있었다면, 1950~1970년대 미국에선 팝아트와 추상표현주의를 미술사의 주류로 만든 화상 레오 카스텔리(1907~1999)가 대활약했다. 그렇다면 한 릴게임추천 국에선 어떤 화상이 미술사를 만들었을까. 많은 미술인은 43년 전 타계한 화상 김문호(1930~1982)를 꼽는다.



성능경 작가가 1973년 명동화랑에서 열린 제2회 에스티 회원전에서 선보였던 입체 작품 ‘상태성’의 재현 작품. 망실됐던 것을 올해 명동화랑 전시를 맞아 다시 검증완료릴게임 만들었다. 노형석 기자


박서보, 하종현, 허황 등의 단색조 회화(모노크롬) 작가들의 전시를 앞장서 차려주면서 제도권 미술판의 주요 사조로 키웠고, 스스로 삶을 접은 조각가 권진규(1922~1973)를 사후 영생하는 거장으로 추앙받는 토대를 놓은 주역이 그였다. 1970년 서울 명동성당 앞 건설회 바다이야기룰 관에 100평에 육박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명동화랑을 창업한 뒤 ‘한국 현대미술 1957~1977’ ‘추상―상황 및 조형과 반조형전’ ‘이우환전’ ‘박서보전’ ‘김구림전’ ‘권진규전’ ‘현대 판화전’ 등을 열면서 추상회화와 개념미술을 구사한 실험미술 작가들을 알리는 데 애썼다.
1973년 명동화랑 전시장을 막걸리 선술집으로 바꿔버린 이강소 바다이야기고래출현 작가의 파격적 퍼포먼스는 미술사 사건으로 회자된다. 골동품 거래 등으로 교분이 있던 일본 도쿄화랑의 야마모토 사장과도 친분을 나누며 1975년 도쿄화랑이 한국 모노크롬회화 태동의 계기가 됐던 ‘5가지의 백색’전을 개최할 때 막후 산파 구실도 했다.
하지만 거래 잇속을 생각하지 않고 안 팔리는 전시를 질러버리는 상황이 거듭되면서 화랑 운영 온라인릴게임 은 파탄으로 치달았다. 임대료를 못 내 작품을 압류당하고 내쫓기면서 화랑은 충무로, 안국동, 인사동을 전전했다. 1980년까지 네번 문 닫고 다섯번 재개관하는 ‘사전오기’로 화제를 모았지만, 운영난 압박으로 암이 발병한 그는 1982년 4월, 52살 나이에 숨졌고, 화랑은 영영 문을 닫았다.



명동화랑 시절 내건 글씨 간판. 갤러리 앞 쇼윈도 공간에 전시 중이다. 노형석 기자


한국화랑협회 설립을 주도하고 초대 회장을 지낸 옛 명동화랑 대표 김문호의 발자취를 기리는 회고전 ‘응답하라! 명동화랑’이 서울 반포 스페이스21에서 오는 27일까지 펼쳐진다. 정연심 홍익대 예술학과 교수와 이유진 스페이스21 대표가 기획한 이 전시회는 화랑과 인연을 맺은 작가 12명(강국진·김정숙·김창열·김태호·성능경·박서보·이건용·이우환·윤형근·진옥선·하인두·허황)의 작품과 1974년 화랑이 낸 최초의 비평전문지 ‘현대미술’을 비롯한 간행물과 도록 등 아카이브를 내보이는 중이다. 고인이 차려준 개인전과 ‘공간과 시간’(에스티·ST) 회원전 등에 참여하면서 신세를 졌던 작가들의 작품들을 선별해 배치했다.
도드라지게 눈에 와닿는 작품은 원로 실험미술 작가 성능경이 1973년 제2회 에스티 회원전에서 선보였던 ‘상태성’의 재현품이다. 전시장 깊숙한 안쪽에서 은빛을 내뿜는 역원뿔 모양의 ‘상태성’은 작가의 흔치 않은 설치미술품으로, 당시 거울처럼 비치는 스테인리스 재료를 파격적으로 택했고, 이후 거울 원리를 응용한 카메라 촬영의 실험 작업이 이어졌다는 점에서 미술사적 의미가 있는 작품으로 꼽힌다.



전시장 한켠에 놓인 여성 조각가 김정숙의 1982년 작 ‘무제’. 청동제 추상 조형물이다. 노형석 기자


1972년 명동화랑에서 첫 국내전을 연 이우환 작가는 1978년 만들고 2013년 재현한 돌과 철판 설치물 ‘관계항’을 들머리에 놓았다. 박서보, 김창열 등 당대 소장 작가들에게 전시 공간을 주며 단색조 추상회화와 개념미술 운동을 펼치게 했던 인연을 보여주는, 박서보의 초기 ‘묘법’ 연작도 만날 수 있다. 역시 화랑에서 전시했던 작고 작가 강국진의 판화 ‘형태(Shape)74’는 겹쳐 찍은 평면 위로 서로 갈마드는 독특한 색감의 일렁거림이 감상의 묘미다. 판화에 심취해 여러 전시들을 기획했던 김문호의 일면과도 잇닿는 출품작이다. 명동화랑을 드나들며 청년 작가 작품들을 뜯어보고 해설했던 비평가 이일의 당대 평론 글도 보여주면서 1970~1980년대 미술 현장을 재조명하려 했다고 갤러리 쪽은 설명했다.



안쪽 전시장 일부분. 명동화랑에서 1970년대 진행했던 ‘오리진’ 전, ‘에스티(S.T)’ 회원 전 등의 전시 포스터들이 액자에 든 상태로 벽에 붙어있다. 그 아래에 아카이브 자료들을 모아서 넣은 진열장도 보인다. 스페이스21 제공


1994년과 2013년의 화랑미술제에서 각각 딸림 행사로 열렸던 두차례의 김문호 추모전에 이어 기획된 이번 전시는 반갑지만 일정한 한계를 노정한다. 1970년대 전위 미술인 단체로 고인의 전폭적 지원을 받은 에이지(AG)그룹의 작품들이 앞서 이 갤러리 개관전에 소개됐다는 이유로 빠졌다. 당대 화랑에서 전시했던 일부 원로 추상 실험미술 작가들은 재현품을 주로 전시했는데, 훨씬 후대인 2000년대 제작품들이 다수를 이뤄 당대 공간의 현장감이 떨어진다. 단층 갤러리의 협소한 공간 때문에 명동화랑에서 벌어졌던 다채로운 미술사적 흐름을 담기란 애초부터 무망해 보였다. 그래서 1950~1970년대 한국 현대미술사를 정리한 화랑의 여러 기획전 자료들과 전시 공간의 세부 변천사에 얽힌 기록들, 수집한 아카이브 정리와 분석 등은 제대로 실행되지 못했다. 김문호가 생활비까지 챙겨주며 처음 국내 미술판에 수차례 전시로 소개했던 조각 거장 권진규의 당시 출품작과 관련 사료들이 거의 없다는 점도 아쉽다. 앞으로 국공립미술관에서 전방위적인 자료 수집과 구술 채록, 심층적인 연구 분석, 대형 서베이 전시 등을 통해 꾸준히 추진해야 할 과제일 터다.



1974년 ‘현대미술’ 창간호에 김문호 명동화랑 대표가 실은 발행인의 편지 친필 초고본. 전시장 들머리 벽에 붙어있다. ‘한 나라의 미술이 발전하려면 작가의 작품을 옳게 글로 표현하는 비평이 활발하여야 하고 그 작품을 이해하고 사주는 분이 많아야 한다’고 적었다. 노형석 기자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